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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협상국
2.1. 플로렌시아2.2. 루이나2.3. 웨스타시아2.4. 빌베른2.5. 협상국의 지휘 체계
3. 동맹국
3.1. 사비에트3.2. 체르드3.3. 라 마베라 연방3.4. 고랜드3.5. 동맹국의 지휘 체계
4.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1차 랜드 전쟁에 참전한 교전 세력을 다루는 문서.

1차 랜드 전쟁에는 랜드해협의 열강 여덟 나라가 협상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참전했다. 양 진영이 동원한 병력은 모두 합쳐 약 2,300만 명에 이르렀다. 두 진영은 체제나 이념이 아니라 포르틸락해협과 랜드해협 해로를 둘러싼 이해관계로 묶였기 때문에, 같은 진영 안에서도 전쟁 목표와 우선순위가 크게 달랐다.
진영
국가
동원 병력
주요 전선
협상국
약 500만 명
체르드 전선, 남부 전선
약 250만 명
해상, 체르드 전선, 남부 전선
약 300만 명
북동 전선, 남부 전선
약 150만 명
남부 전선, 동남 해역
동맹국
약 500만 명
남부 전선, 해상
약 330만 명
체르드 전선
약 170만 명
북동 전선
약 100만 명
남부 전선

2. 협상국 [편집]

2.1. 플로렌시아 [편집]

플로렌시아는 협상국을 이끈 나라였다. 앙드레 뒤몽 총리는 개전 직후 전시 내각을 꾸렸고, 협상국 최고전쟁회의에서 공동 작전 계획을 주도했다. 플로렌시아의 전쟁 목표는 콘스탄티노폴의 조차지와 해협 체제를 지키고, 체르드와 맞닿은 동부 국경을 안정시키며, 식민지로 이어지는 해로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플로렌시아는 약 500만 명을 동원해 협상국 가운데 가장 큰 병력을 전장에 보냈다. 이는 약 250만 명을 투입한 루이나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주력은 체르드 전선을 맡았고, 1961년의 추분 공세도 플로렌시아군이 주도했다. 남부 전선에는 식민지 부대를 포함한 원정군을 보내 남풍 작전에 참여했다.

전쟁 동안 플로렌시아는 전사와 실종을 합쳐 약 38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소득세와 법인세가 대폭 인상되었고 물가와 임금이 통제되었으며, 식민지의 인력과 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한 대가는 전쟁 뒤 식민지 독립운동으로 돌아왔다.

2.2. 루이나 [편집]

루이나의 전쟁 목표는 랜드해협 중앙 해역의 제해권을 지키고 사비에트 해군이 중앙 해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 콘스탄티노폴의 남항구 조차지와 하트웰 광업의 타우로 광산 채굴권도 지켜야 할 이권이었다. 개전 당시의 로런스 D. 페닝턴 대통령은 1961년 임기를 마쳤고, 뒤를 이은 헨리 모리슨 대통령이 종전까지 전쟁을 이끌었다.

루이나 전력의 핵심은 해군이었다. 랜드해협 최강의 함대를 보유한 루이나 해군은 포르틸락 해전과 중앙해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해협과 중앙 해역을 장악했고, 전쟁 내내 해협 봉쇄와 호송 선단 작전을 맡았다. 약 250만 명의 동원 병력 가운데 해군을 제외한 지상군은 체르드와 맞닿은 북부 국경의 방어와 유고랜드로 보낸 원정군으로 나뉘어 운용되었다.

루이나는 1957년 하쿠센 조약과 1958년 랜드 안보 3국 동맹을 통해 북산의 항만과 조선소를 후방 기지로 쓸 수 있었다. 루이나 본토는 체르드와 맞닿은 북부 국경 지대가 포격과 공습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지상전의 무대가 되지 않았다.

2.3. 웨스타시아 [편집]

1956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앨빈 C. 요크의 군사정권에게 이 전쟁은 숙적 라 마베라를 꺾고 1958년 괴뢰국으로 만든 유고랜드를 지키는 전쟁이었다. 북동 전선의 지휘는 오토 폰 하르트만 원수가 맡았다. 하르트만은 개전 초 라 마베라군의 공세를 국경 방어선에서 버텨 냈고, 1962년 반격을 지휘해 라 마베라군을 국경 밖으로 밀어냈다.

웨스타시아가 동원한 약 300만 명에는 괴뢰국 유고랜드에서 징집한 병력이 포함되어 있다. 요크 정권은 전쟁 중인 1960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해 군수 산업을 키웠고, 승전을 발판으로 권력을 굳혔다.

2.4. 빌베른 [편집]

빌베른은 루이나·북산과 맺은 랜드 안보 3국 동맹의 의무에 따라 참전했다. 사비에트 해안과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남부 해안의 안보도 참전의 중요한 이유였다. 빌베른군은 콘라드 슐체 참모총장이 지휘했다.

빌베른은 약 150만 명을 동원해 남부 전선에 원정군을 보내고, 사비에트 동부 해안을 봉쇄하는 동남 해역 작전을 맡았다. 빌베른의 남부 항구들은 협상국이 동사랜드 인민적군에 물자를 몰래 보내는 해상 경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2.5. 협상국의 지휘 체계 [편집]

협상국은 1958년 5월 각국 정부 수반과 군 수뇌가 참석하는 협상국 최고전쟁회의를 설치했다. 지상 작전은 플로렌시아 참모본부가, 해상 작전은 루이나 해군이 주도하는 분업 구조였다.

최고전쟁회의 안에서는 우선순위를 둘러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플로렌시아는 병력을 체르드 전선에 집중하기를 원했고, 루이나는 제해권 유지와 남부 전선을 앞세웠다. 웨스타시아는 북동 전선을 사실상 독자적으로 운영했다. 그럼에도 협상국은 바다를 통해 병력과 물자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싸운 동맹국보다 훨씬 긴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3. 동맹국 [편집]

3.1. 사비에트 [편집]

사비에트의 전쟁 목표는 해협 항행 규칙을 철폐하고 중앙 해역과 포르틸락해협에 대한 해군의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해협 남안에 들어선 협상국의 거점 유고랜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쟁은 세르게이 안토노프 서기장과 니키타 인터루쇼프 총리의 집단지도 체제가 이끌었다.

사비에트는 약 500만 명을 동원해 동맹국 가운데 가장 큰 병력을 냈다. 인민해방군 주력은 남부 전선에서 유고랜드를 공격했고, 해군은 개전 초 수상 함대로 중앙 해역의 돌파를 시도하다 실패한 뒤 잠수함을 이용한 통상파괴전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동사랜드 자치공화국의 치안과 청평 국경의 경계에도 병력을 묶어 두어야 했기 때문에, 병력 규모에 비해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제한되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비에트의 부담은 커졌다. 1959년부터 청평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1961년부터는 청평이 동사랜드 인민적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루이나와의 우주경쟁에도 막대한 자원이 들어갔다. 사비에트의 전쟁 경제는 1960년 이후 소련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

3.2. 체르드 [편집]

1919년 공화국으로 출범한 체르드는 아르카디 이바노프 대통령이 전쟁을 이끌었다. 체르드의 전쟁 목표는 조차국들이 쥐고 있던 해협의 통제권을 무너뜨리고, 자국 해안과 맞닿은 포르틸락해협에서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체르드는 인구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인 약 330만 명을 동원해 플로렌시아·루이나와 맞선 체르드 전선을 홀로 떠맡았다. 개전 직후 해협이 봉쇄되면서 사비에트의 무기 지원이 끊겼고, 1960년 이후에는 봉쇄로 인한 물자 부족이 전쟁 수행을 크게 제약했다.

3.3. 라 마베라 연방 [편집]

라 마베라 연방은 상페드로 3세 국왕 아래에서 참전했다. 라 마베라의 전쟁 목표는 숙적 웨스타시아를 꺾고 유고랜드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는 것, 그리고 해협 항행 규칙을 철폐하는 것이었다.

약 170만 명을 동원한 라 마베라군은 북동 전선에서 웨스타시아를 공격했으나 국경 방어선을 넘지 못했다. 해협 봉쇄는 라 마베라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전쟁 부담이 커지면서 연방을 이루는 지방 사이의 갈등도 깊어졌다.

3.4. 고랜드 [편집]

1952년 라 마베라에서 독립한 고랜드는 바티스타 왕가의 무하마드 알자히르 칸 국왕과 무자파르 칸 총리가 전쟁을 이끌었다. 고랜드는 독립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사비에트에 안보를 기대고 있었고, 동쪽 이웃 유고랜드가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 되자 이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고랜드는 약 100만 명을 동원해 남부 전선의 서쪽 축에서 유고랜드를 공격했다. 병력의 상당수는 부족 단위로 모집된 비정규 부대였고 보급 능력도 약했기 때문에, 1961년 남풍 작전 이후 협상국의 반격 앞에서 빠르게 무너졌다.

3.5. 동맹국의 지휘 체계 [편집]

동맹국은 4국 상호원조 조약에 따라 각국 군 수뇌가 참여하는 4국 군사위원회를 두었으나, 위원회는 부정기적으로 열렸을 뿐 실질적인 지휘권을 갖지 못했다. 1958년 7월 중앙해 해전 이후 해협 북부와 남부의 연락이 사실상 끊기면서 네 나라는 각자의 전선에서 따로 싸웠다.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 파견된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은 본국과의 연락이 끊긴 채 고립되었고, 두 나라는 사비에트의 무기 대신 중립국 델라웨어를 거쳐 들여온 물자에 의존해야 했다. 동맹국 사이에 전략을 조율할 수단이 없었다는 점은 협상국과 대비되는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4. 관련 문서 [편집]